'코로나19'를 경험 삼아 혁신적인 양질의 의료 환경 구축돼야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의료시설②

이현진 건양대학교 의료공간디자인학과 교수, 건축사

​  〈일본 시나가와 구립복합시설 : 재활병원 + 도서관〉
​  〈일본 시나가와 구립복합시설 : 재활병원 + 도서관〉

지난 2015년 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CoV·메르스) 확산 이후 한국식 병문안 문화가 병원 내 감염확산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라 정해진 면회시간에만 입원환자의 면회가 가능한 지침이 시행되고 있다. 최근 4주기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기준에서는 병문안 통제시설과 보안인력 배치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에 많은 병원은 병동 층 엘리베이터 홀에 슬라이딩 도어 설치와 출입카드 사용을 권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꼬리를 물고 출입하는 방문객을 막을 길은 요원해 보인다. 방문객의 병동 층 진입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원환자가 환자복을 입고 외래진료구역을 활보하는 것을 제한하는 동선 계획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의료시설은 이용자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많은 출입구를 필요로 한다. 외래환자와 입원환자의 동선 분리뿐만 아니라 △환자와 의료진 △청결물품과 오염물품의 구분 △하역을 위한 출입구 계획 △응급환자와 감염환자의 동선 분리 심지어는 사체운구 동선까지도 고려해서 계획되어야 한다. 입구의 분리와 통제는 의료시설 계획의 기본 중의 기본처럼 숙고를 요구한다. 게다가 수없이 많은 동선의 분리와 연결은 의료시설 규모와 관리체계에 따라 다르게 선택되어야 한다. 동네병원과 종합병원이 어찌 같은 기준으로 필요한 모든 시스템에 대응할 수 있겠는가. 요즘 같이 감염병에 민감한 시기에는 동네 내과나 이비인후과의원과 같은 건물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불편해 한다.

​  〈일본 시나가와 구립복합시설 : 재활병원 + 도서관〉
​  〈일본 시나가와 구립복합시설 : 재활병원 + 도서관〉

 

메르스 사태 교훈으로 우리나라는 원내 감염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면서 예방을 위한 다인병실기준이 과거 6인 병실, 심지어 10인실에서 4인실로 의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2020년 1월부터는 국민의료부담을 경감하겠다는 목적으로 2인실 이상 일반병상을 50~80% 의무 설치하도록 규정하였다. 의료수가 적용병실 기준과 간호인력 배치, 그리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운영에 따라 영향을 받겠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감염관리를 위한 1인실 설치에 대한 필요성을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미국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인실을 의무화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병동의 간호단위는 변하고 있다. 과거 한 간호단위당 50~60병상이었던 것이 점점 줄어 40~45병상으로 축소되는 추세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는 기존 원내감염에서 지역 집단감염의 형태로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대규모 확진환자의 발생은 지역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의료시설의 수용 규모를 훨씬 벗어나 격리병상 부족으로 확진환자 스스로가 자가격리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개의 음압격리병실을 설치하는데 많은 비용이 든다. 무한정 음압격리병실을 의무화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집단 감염환자가 발생되었을 때 가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1인실 설치 의무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추진되어야 할 사업은 ‘지역중심 보건의료시설 확충 및 복합화’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긴급한 의료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가까이 위치하면서도 빠르게 의료시설로 전환될 수 있는 공공시설을 일상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이번 대구·경북지역에서는 경증환자 또는 의심환자가 병실이 없어서 대기하며 병을 키우는 일도 벌어졌다. 대량으로 긴급한 의료행위가 발생했을 경우, 응급 및 중증환자는 종합병원에서 치료하고, 경미한 환자의 경우는 지역중심 보건의료시설에서 처치 또는 대기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 지역의료시설 복합화와 관련한 두 가지 선진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  〈일본 시나가와 구립복합시설 : 재활병원 + 도서관〉
​  〈일본 시나가와 구립복합시설 : 재활병원 + 도서관〉

 

지난 2018년 3월에 개원한 도쿄 시나가와 구립초등학교 부지에 건설된 지상 8층 규모의 ‘시나가와 재활병원’은 △지상1층 외래진료, 주간보호시설(데이케어) △3~4층 100병상 규모의 개호노인보건시설(노건老健케어) △5~7층 130병상의 회복기 환자를 담당하는 지역재활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눈여겨 볼만한 것은 지상2층에 위치한 시나가와 구립도서관이다. 1층 널찍한 방풍실을 통해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2층 구립도서관으로 진입이 가능한 누드 엘리베이터가 있다. 또 책들이 즐비한 도서관 유리창을 통해 지역주민은 쉽게 도서관을 인지할 수 있다. 반면 왼쪽으로는 재활병원의 외래와 재활치료실이 유리창 너머로 한눈에 들어온다. 의료시설로 들어서기 전 이용자는 손 씻는 시설에서 손 세정 후 진입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마스크와 손 씻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의료시설의 손 씻기 시설 설치뿐만 아니라 공공시설, 공용 공간 내 손 씻기 시설의 적극적인 설치하는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싱가폴의 주롱헬스캠퍼스(Jurong Health Campus)는 응텡퐁 종합병원과 주롱 커뮤니티병원, 주롱 메디컬센터가 두 개의 하늘다리로 연결되어 인근 지하철과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진입 가능한 큰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주변 상업시설과 업무시설이 연계되면서 이용자는 자유롭게 여러 방면에서 헬스캠퍼스로 접근 가능하다. 다만 병실로의 진입은 스피드게이트 설치로 철저히 통제되며, 환자·방문객·의료진의 동선이 분리되어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즉, 부끄럽게 스피드게이트를 뛰어 넘어가지 않는 이상 병동으로의 진입은 어렵다는 것. 

〈싱가폴 응텡퐁 종합병원 병동진입 통제〉
〈싱가폴 응텡퐁 종합병원 병동진입 통제〉

 

인구의 변화로 학교시설 복합화를 통한 지역 과밀·과소 학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오래 전이다. 이는 보육시설, 체육관, 수영장, 도서관, 노인복지시설 등 주민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학교를 중심으로 입체화하려는 시도다. 최근에는 생활 기반 시설(SOC:Social Overhead Capital) 복합화 사업의 일환으로 공공시설에서 건강·여가·문화뿐만 아니라 복지 분야까지 복합화에 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8년 정부는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 돌봄서비스)’를 발표하였다. 이는 병원중심의 돌봄에서 지역사회 기반중심으로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지속가능하고 비용도 효율적인 케어를 핵심요소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지역포괄 케어 시스템’과 유사한 서비스로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30분 이내의 일상생활권역의 삶, 의료, 장기요양서비스, 장기요양서비스 예방, 생활지원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우리는 사건·사고로 한 단계 발전한다. 이번 코로나19 감염을 극복하고 나면 이를 경험삼아 혁신적인 양질의 의료 환경이 구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모든 해답은 보편적 상식에 있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깨끗이 씻으며 사회적 거리를 두는 행동이 필요한 것처럼 감염관리를 위해 동선을 분리하고 1인실을 확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고 교육받고, 의료지원과 생활지원이 가능한 삶을 위해 지역중심 보건의료시설의 복합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안전이 우선시되는 융통성 있는 환경이 진정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안심하는 의료시설환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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