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괜찮아요?” 최근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지인, 혹은 처음 만난 분들께도 듣는 첫 안부인사이다. 2022년 코로나를 겪으며 어느 정도의 계획과 목표, 시장 상황을 대비하여 사무실을 오픈했지만 생각보다 현실은 더 치열하고 처절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뒤따라 터지면서 원자재 값과 더불어 공사비가 급등하며 허가받은 프로젝트들은 줄줄이 착공을 못하고 무기한 홀딩되었다. 규모를 줄이거나 용도를 바꾸는 등 설계변경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오를 대로 오른 금리 영향으로 매매나 임대, 분양사업은 무모한 일로 여겨져 오랫동안 공들였던 관계자들의 연락은 잠잠해졌다.
  그나마 살아남은 프로젝트에선 관행처럼 이어져 온 분위기 속에 착공신고, 사용승인, 준공도서 작성 등 업무의 주체가 아님에도 대가없이 대행해야 하는 상황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건축사 고유의 업무인 ‘건축설계’와 ‘감리’는 기본이요. 비전문가의 주도하에 공간 기획이 이뤄지는 일이 많아지고, 건축사사무소들은 브랜딩과 부동산 개발, 사업성 검토까지 업무의 역할을 넓히며 경쟁력을 갖춰야만 했다. 업역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렵게 수주한 일들이었다. 복잡해져가는 심의나 인증 절차 등 책임과 업무는 늘어났지만 같(지만 낮)은 설계비 안에 퉁쳐지는 것을 감내해내고, 감리나 인테리어는 설계와 1+1 상품처럼 서비스로 요구받기도 하며 정말 최소한의 금액만으로 진행된 일들이었다.
  첫 계약 때 요율 계산에 따른 대가 기준을 제시하면 시장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20-30%정도 낮춰야 조금 수긍하는 듯했으며, 설계변경이나 중지, 추가용역에 대한 부분에선 내세울 수 있는 정당한 근거와 기준이 모호하여 합의가 쉽지 않았다.
  “그럼 안하면 되지.” 누군가 말할 수 있다. 나 또한 이 비현실적인 생태계의 변화를 바라며 당당하고 싶은 마음과 “이 일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타협의 부끄러움, 그 경계선에서 오늘도 위태로운 줄타기를 한다. 관계를 깨뜨릴 만큼의 용기가 생존 앞에선 차마 나지 않았다. 조금 더 현실적인 제도와 기준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대가 지급에 상당하는 증빙서류를 허가 시 제출하도록 하거나 대금 지급 비율을 허가 기준으로 90% 이상 지불하도록 조정하면 설계비 회수에 더 도움이 되었을까? 자유시장경제에서 경쟁에서 하는 건 좋지만 저가 입찰로 귀결되는 상황이라면, 이 시장은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최저 설계비에 대한 기준은 왜 없을까?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100건 이상 상담해온 결과 비교견적이라고 내민 견적서에는 정말 터무니없이 낮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고, “건축 상담과 기획설계는 유료입니다”와 같은 캠페인의 효과는 미약했다. 세분화되지 않은 항목에 대한 업무 범위를 정하고, 건물의 난이도, 용도, 공사비, 인건비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한 합리적인 대가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건축은 우리의 주거, 교육, 생활을 비롯해 머물고 움직이는 모든 순간의 배경이 된다. 건축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배경을 위한 공간의 물리적 구축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날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고민하고, 경험으로 이어지게하는 정신적 구축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공간일 뿐 아니라 그에 따르는 감정이나 감각, 정서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삶의 질에 이토록 영향을 끼치는 일이 어디 있던가. 하루 빨리 개선되어 가격 경쟁이 아닌 건축의 본질적 가치에 관한 공정한 경쟁이 되어야 한다. [건축사법 제1조 건축물과 공간 환경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건축문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건축사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생존이 아닌 다정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서울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